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로 이주한 그는 1919년 만주에서 결성된 27결사대(決死隊)에 가입하여 독립투쟁을 개시하였다. 이 결사대의 조직목적은 매국노 을사오적(乙巳五賊)과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에 서명한 매국대신(賣國大臣)들을 주살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결사대 동지들은 1919년 3월 3일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일을 택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대원들은 2월 말경 서울에 도착하여 거사 지점인 망우리(忘憂里) 고개를 살피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나, 이 탁(李鐸)이 준비하기로 한 권총 등이 입수되지 못하여 당일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기는 3월 15일 입수되었고 그와 대원들은 일제(日帝)에 대한 성토문과 격문을 여러 곳에 게시하는 한편 재차 거사할 기회를 엿보면서 3월 20일에는 손창준(孫昌俊)·박기한(朴基寒)·이기원(李基源) 등과 함께 인사동 한봉취(韓鳳翠) 집에서 군자금 120원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서울 시내는 이미 일제의 비상경계망이 펼쳐진 상태여서 좀처럼 거사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그는 일부 대원과 함께 6월 5일 붙잡혔다.
1919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8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5·269·270·277면
- 동아일보(1920. 9. 3, 1921. 3. 1, 3. 4, 3. 5, 3. 12, 5. 10, 5. 29, 6. 18, 1922. 1. 28, 1926.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