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6월부터 10월까지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일대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합세하면서 의병 운동은 그 기세를 더해갔다. 지방의 포군(砲軍)으로 근무했던 권순명(權順明)은 1908년 8월 김춘쇠의진(金春釗義陳)에 참여하여 동료 의병 60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楊州郡)ㆍ가평군(加平郡),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9월 30일 홍천군 남천리(南川里) 전투 이후 의진이 붕괴되었으나 잔존 의병들과 함께 항전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었다.
김한경은 1909년 음력 6월 21일 오후 11시경 권순명과 함께 강원도 횡성군 한당리(漢堂里), 음력 8월 5일 오후 9시경 덕가락리(德可樂里)에서 당목 3필, 양목 1필 등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음력 9월 26일 대미면(大味面) 돌기거리(乭基巨里), 음력 10월 30일에는 오원리(五院里)에서 목면 20척, 금건 1필 등을 군수품으로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 청주지부(淸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공소했지만, 같은 해 5월 3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기각되었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5년, 1914년 칙령 제104호에 의해 징역 4년 6월 10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10. 3. 23)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10. 5. 3)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00~4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