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북 강계(江界)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강계읍 동부동(東部洞)에 살면서 읍내의 영실학교(英實學校)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인 반면 교통이 불편하여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는 같은 학교의 동료교사 김경하(金京河)와 교회장로인 동시에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회계일을 맡아 보던 한봉민(韓奉珉)과 협의하여 뜻을 같이 하고 21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24일 영실학교 사무실에 모여 만세운동에 책임지고 희생할 것을 각오한다는 내용의 연판장(連判狀)을 작성하였고 태극기 원판을 새겨 하룻밤 사이에 태극기 2천장을 찍어내는 등 주도면밀하게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거사준비에 착수한 지 2주일만인 4월 8일 약속된 오전 11시 남장대(南將臺) 예배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이골목 저골목에 매복하여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한아름씩 안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집집마다 돌리며 내닫기 시작하였다. 마침 장날이어서 장꾼이 이에 합세하므로써 군중의 수는 증가되었다.
길거리는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였고 만세시위 대열은 예정대로 남문(南門)에서 북문(北門)까지의 큰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 행진코스는 이곳의 중심가로 인구밀집지대였고 군청·헌병분견소·천도교회당 등이 있었다.
이때 그는 명신학교·영실중학교 등 학생대열의 선두에서 시위행렬을 지휘하며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일경의 야만적인 실탄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江界誌(1966. 5月 發行) 173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6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482∼486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6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