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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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萬龍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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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1908. 6월 신보현 의진(申保[甫]鉉義陣)에 소속되어 100여명의 의병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전북(全北) 순창군(淳昌郡) 일대(一帶)에서 군수금품을 모집하는 등 활동(活動)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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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순창(淳昌) 사람이다. 신보현(申甫鉉)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순창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 활동, 종교와 그 단체를 통한 종교 활동,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활동, 국어와 국사 연구를 통한 학술 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계몽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것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김만룡은 이같은 시기 신보현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신보현 의병장의 지휘 아래 주로 군자금품 수합활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1908년 6월 20~21일 동료 의병 100여 명과 함께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전북 순창군 복흥(福興)면 일대에서 군량미를 수합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8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27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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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만룡 - 전라북도 순창(淳昌) -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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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강도 징역 3년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1909-08-18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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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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