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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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洛先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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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1909. 4월 국호남(鞠湖南) 의병진(義兵陣)에 참여하여 전북(全北) 흥덕(興德)·부안군(扶安郡)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5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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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부안(扶安) 사람이다.

국호남(鞠湖南) 의진에 참가하여 전북 부안·흥덕(興德)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같은 시기에 국호남 의병장이 의진을 조직하여 대일 투쟁을 전개하자, 김낙선은 1909년 4월 10일 국호남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같은 해 4월 15일 군자금과 군수품 수합활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국호남 의병장의 지시에 따라 채봉선(蔡鳳善)·최동이(崔同伊)·박춘집(朴春楫) 등 동료 의병 15명과 함께 총기 10정을 휴대하고, 흥덕 입현촌(笠峴村)에 들어가 군수품을 수합하고, 또 같은 달 18일 부안군 입하(立下)면 입석(立石)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같은 달 25일 다시 부안군 건선(乾先)면 화전(花前)동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24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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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낙선 - 전라북도 부안(扶安) 후기의병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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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강도 징역 15년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1909-07-28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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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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