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평북 강계군(江界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유상우는 1919년 3월 하순 강계군에서는 동지들과 상의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이들은 1919년 4월 8일 거사하기로 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1,000장씩 만들고 청년, 학생들에게 연락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8일 11시가 되자 남장대(南將臺) 예배당에서 울리는 종소리 신호로 골목에 매복했던 학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돌리며 만세운동은 시작되었다. 장꾼들의 합세로 삽시간에 수천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열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북문으로 향하였다. 행렬이 거의 북문에 도달하였을 즈음, 돌연 기마헌병들이 총에 칼을 꽂아 들고 군중을 위협하며 발포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정준(鄭儁), 김병찬(金秉賛), 손주송(孫周松) 등이 순국하고 부상자도 속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유상우는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소요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유상우는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평북 강계의 참사(參事)로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20년 10월 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1년에는 조선청년회연합회 조직에 참여한 강계청년수양회(江界靑年修養會)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倭政時代人物史料(國會圖書館, 1983) 제5권 10면
- 일본의 한국침략사료총서(韓國出版文化院, 1988) 제4권 579·703·71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81~486면, 제4권 461~462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新聞(1920. 1. 13)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3)
- 靑年會統一計劃(1921. 1. 18)
- 조선민족운동연감(上海日本總領事館) 11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2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