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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9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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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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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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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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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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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만주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그 뒤 서일(徐一) 등과 함께 중광단(重光團)을 토대로 적극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기 위하여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정의단(正義團)을 조직하였다. 그 후 무기를 준비하지 못하고 고심하던 차 국내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사건으로 김좌진(金佐鎭)이 만주로 오자, 그를 맞이하여 1919년 8월 7일 서 일·현천묵(玄天默)·이장녕(李章寧) 등과 함께 정의단을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군사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군정부(軍政府)를 조직하였다. 본영을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서대파구(西大坡溝)에 두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시베리아에 출병하였던 체코 군대에 교섭하여 노령 해삼위(海蔘威)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경무장(輕武裝)을 하였다. 이해 12월 군정부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라고 개칭하고 그는 경리부장에 취임하여 일본군과 실력으로 대항할 양곡과 장비를 갖추는데 힘썼다. 한편 간북(墾北) 북부총판재무관서의 재무관에 취임하여 동북만주 교민과 자치 및 경제력 향상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그리고 이해에 청산리독립전쟁(靑山里獨立戰爭)에 참가하여 큰공을 이루었다. 청산리전투에 패배한 일본군이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만주로 출병하자 남북만에 분산 연립하였던 독립운동단체들은 밀산(密山)에 모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노령으로 이동하게 되니, 그도 함께 이동하여 소련군과 협정을 맺어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배신으로 김좌진과 함께 만주로 되돌아오다가 영안(寧安) 부근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773, 904, 915, 97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82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8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8, 7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0, 320, 422, 463, 47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87, 364, 374, 4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772면
- 항일순국의열사전 264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18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0, 320, 422, 463, 47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