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평안북도 강계군에서는 1919년 4월에 들어서 만세시위가 나타났다. 정준(鄭儁) 등은 4월 2일 김관순(金寬淳)과 회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태극기 안에 연명 날인하였다. 연명 날인자는 21명에 달하였다. 시위일은 4월 8일로 정해졌다. 이들은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4월 8일 오전 11시 기독교회당에서 울린 종소리를 신호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약 700~800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김관식은 이에 참여하였다. 출동한 일본 보병과 헌병이 시위 군중을 향해 경고 없이 총을 쏘았다. 이로 인해 시위를 이끌던 정준 등 4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관식은 1919년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출판법(出版法) 위반, 소요(騷擾)’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징역 7월 9일형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9.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6집 1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