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김제(金堤) 사람이다. 전해산(全海山)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김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등 한국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당시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김광춘은 이같은 시기인 1909년 전해산(全海山) 의진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先鋒將)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다시 기병하여 전라도 나주(羅州)·영광(靈光) 일대를 중심으로 1909년까지 일제에 대항하여 치열한 항쟁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특히 김광춘은 1909년 7월 12일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적 수단으로 동지 김찬경(金贊京)·공사일(孔士一) 등과 협의하여 전북 김제군 서포면(西浦面) 원기리(院基里)에서 무기와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9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35·6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