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김수민(金秀敏)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장단·양근(楊根)·연천(漣川)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김수민은 장단 사람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참가하여 반외세(反外勢)·반봉건(反封建)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제의 농민수탈이 나날이 강화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라 일제에 의해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농민들을 조직화하여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7년 8월 살고 있던 장단군 북면 솔랑리(率浪里)에서 의병을 모집하면서 무장을 준비하여 갔다. 우선 그는 군부(軍部) 소관의 대포를 빼앗아 무장하고, 같은 군 북면 덕음동(德蔭洞)을 거점으로 군량미를 마련하고, 보부상을 모집하여 정보대로 삼아 적정을 탐색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김수민 의병장이 의진을 조직할 때 김거복은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는 김수민의 지휘 아래 1907년 10월 23일 장단군 고부성(高斧城)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교전하였다. 그리고 1908년에 들어와 소부대 유격전술로 투쟁방식을 전환한 김수민의 지휘 아래 2월 경기도 마전(麻田)의 일본군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였고, 4월 16일에는 장단군 구화장(九化場) 일본군 헌병분견소를 기습 공격하여 일본군 헌병을 사살하고 분견소를 점령한 후 다량의 병기와 탄약을 노획하기도 하였다. 그는 같은 달 연천군 북면에서도 일본군 헌병대와 교전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1월 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