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21년 음력 9월 중국 임강현(臨江縣) 두도구(頭道溝)에서 무장투쟁 단체에 가입하여 군자금 및 군량을 모집하고, 1925년부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분대장에 임명되어 국내 진공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최찬성은 1903년 3월 18일 평안북도(平安北道) 강계군(江界郡) 문옥면(文玉面)에서 태어났다. 1921년 음력 9월 중국 임강현 두도구에서 김우근(金祐根)의 권유로 무장투쟁 단체에 가입했다. 이 단체가 1922년 8월 대한통의부로 통합됨에 따라 대한통의부의 검무원이 되어 군자금 및 군량 모집을 담당했다.
1922년 12월 25일 김우근 외 12명과 함께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장토면(長土面) 호하동(湖下洞)에서 총 13원 50전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11월 1일에는 동료들과 임강현 육도구(六道溝)에서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조선인들을 처단하였다.
이후 대한통의부는 극심한 분열을 보였고 1924년 11월에 조직된 정의부(正義府)에 상당 부분이 흡수되었다. 최찬성은 정의부에 통합되지 않은 진동도독부(鎭東都督府) 소속으로 무장투쟁을 지속했다. 진동도독부는 국내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최찬성은 을분대장(乙分隊長)으로서 1925년 5월 부하 9명과 국내 진격 작전을 계획했다.
이로인해 체포되어 1926년 6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살인‧주거침입‧강도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공소하였다. 동년 9월 10일 공소를 취하하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5월 1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시대일보(時代日報)(1925. 6. 4)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