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북 제천(堤川) 사람이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의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에 지방의 포군(砲軍)으로서 근무했던 권순명은 1908년 8월 김춘쇠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김춘쇠 의병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60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가평군,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면서 일본군 수비대와 여러 차례 교전하는 등 의병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1908년 9월 30일 강원도 홍천군 남천리(南川里) 전투에 참여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김춘쇠 의병장 등 30여 명의 동료 의병들이 전사하여 의진이 붕괴되었지만, 그는 잔존 의병들과 함께 항전을 지속하여 갔다. 그리하여 이듬해 10월 30일 김한경(金漢京)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강원도 횡성(橫城)군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3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400·4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