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경북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다. 권대일의 집안은 대대로 향리를 하였으며 좋은 명성이 있고 사람됨이 강개하고 절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고향인 안동지방은 영남 만인소(萬人疏)의 중심지로 위정척사운동의 본고장이자 일찍이 1894년 8월 공주 유생 서상철(徐相轍)이 의병을 일으켰던 곳이다. 그는 1895년 8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있던 상황에서, 그 해 11월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반발하여 1896년 1월 초 의병을 일으켰다. 이 시기 권대일은 양아버지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친아버지께 나가서, "나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마 원수의 적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연로하시지만 다행히도 두 형님이 계시니 부디 저를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하고 아뢰어 승낙을 얻고, 앞장서서 통문을 돌리며 인심을 격동하니 사방에서 모두 기약이나 한 듯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896년 1월 17일 안동향교에서 권세연(權世淵)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편성하니 단발령에 철저하던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은 도망하였다. 이 때 그는 의병진과 함께 안동부를 점령하는 데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의성(義城)에서 이만도(李晩燾)가 의병을 일으키니 의세는 더욱 드높아 갔다. 그런데 같은 해 1월 29일 적군이 다시 안동부를 점령하였다. 이렇게 안동의 의병진이 패하자 권대일은 슬퍼 분개하며 손으로 땅을 치며 영중(營中)에서 말하기를 "장부가 거의하여 죽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하여 완전한 계책에 따라 병사를 단속하지 않았는가"라고 하고, 즉시 스스로 청하여 선봉이 되어 군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안기(安奇) 뒷산에 진을 치고 "도망하는 자는 참(斬)한다"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항전하였다. 이에 그는 단지 30여 명의 병사를 인솔하고 곧바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힘이 다해 전투 중에 장렬하게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53·5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1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