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1년 부 (父) 조문수 (趙文壽) 와 같이 한족연합회 (韓族聯合會) 에 2년반 동안 활동
2. 1936년 7월 14일김태훈 (金泰勳) 과 같이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동당 (同党) 간부특별훈련반 (幹部特別訓練班) 에서 교육을 받은 후 동당 (同党) 천진지방 조직책 (天津地方組織責) 으로 1937. 2. 15 제남 (濟南) , 천진 (天津) 을 거쳐 영구 (營口) 에 잠입 활약하다가 천진 출타중 피체 되어 평양복심법원 (平壤覆審法院) 에서 2년형을 받고 신의주 (新義州) 형무소에 복역 하고 1939. 10. 19 출감하였음 (가출옥 (假出獄) 관계서류 1939. 10. 13, 10.14, 45의, 16 행형갑 (行刑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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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36년 7월 14일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북 보은(報恩) 사람이다.
일찍이 부친 조문수(趙文壽)와 같이 만주로 건너가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가 만주를 석권하자 상해로 갔다.
그는 김낙제(金樂濟) 김태훈(金泰勳) 등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여 남경(南京)군관학교 특별훈련반에서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았다. 1937년 2월 15일 동당 천진(天津)지방 조직책으로 제남(濟南), 천진을 거쳐 영구(營口)에서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신의주로 압송되어 193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김태훈(金泰勳)과 함께 징역 2년형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5면
- 동아일보(1937. 11. 3,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