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의병들은 일본군에 본격적인 저항을 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를 처단하는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철원군(鐵原郡)과 마전군, 장단군 등지에서는 1907년부터 박종한(朴鍾漢) 의진 수백 명이 일본군 및 순사대와 교전하며 활동하였다. 박종한은 당시 임진강 유역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허위(許蔿)의 지휘 아래 있던 김규식(金奎植) 의진에 참여하여 군자금과 군수품 모집 및 관공서와 일본군 부대 습격, 교전 등의 활동을 펼쳤다.
구만성은 박종한 의진에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07년 음력 11월 무렵에는 헌병대에 의병을 밀고한 마전군 하신면(河新面) 면장을 박종한 등과 함께 총살하여 처형하였다. 또한 11월경 무기를 휴대하고 장단현 내 여러 지역에서 철봉과 군도 등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1월부터 이듬해 1908년 음력 1월까지 총검을 휴대하고 장단군과 마전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구만성은 1909년 2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와 1906년 9월 10일 경성공소원에서 이른바 ‘살인 및 강도’ 죄로 교형(絞刑)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09년 9월 23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1919년 10월 21일 경성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심원:1909. 9. 23)
- 일성록(日省錄)(1909. 10. 9)
- 관보(官報)(1909.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