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0051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康基贊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의병장(義兵將)으로서 1908년에 평북(平北) 영변(寧邊)을 중심으로 활동(活動)하였으며 자위단장(自衛團長)에게 총기(銃器)와 탄약을 모집하던 중 피체(被逮)되자 탈출하려다 피살(被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평북 영변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의해 우리나라는 국권이 피탈되고, 이어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 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같은 국망의 상황에서 강기찬은 의병을 일으켜 일제를 축출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 강기찬은 영변에서 동료 의병 2명을 인솔하고 총기와 탄약을 마련하기 위해 자위단(自衛團) 단장을 습격하였다.

자위단은 한국 민중이 의병을 지원하고 동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제가 부일배와 일본인들로 만든 관제 조직으로, 이 때는 주로 의병탄압에 동원되고 있었다. 때문에 강기찬은 이들을 응징하고 무기를 노획하기 위해 공격하였으나 전투과정에서 중과부적으로 붙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청으로 압송 도중에 탈출을 기도하다가 자위단원들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540·63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3집 63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강기찬 - 평북 영변(寧邊) -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강기찬(관리번호:10051)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