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대구 계성(啓星)중학교 재학중인 1938년경, 교회를 중심으로 소년면려회(少年勉勵會)를 조직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하였다.
그후 1941년, 일본으로 유학한 그는 일경으로부터 요시찰대상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아오다가 1944년 1월 20일에 일본군 대구 24부대에 강제 징병되었다. 이무렵 일제는 전쟁에 광분하여 소위 조선인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도란 명목으로 조선인 학생들을 그들의 전선으로 끌어내고 있었는데 이같은 학병지원은 어디까지나 표면상 지원이었지 실제는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대구24부대에 모집된 600여명의 학병중 대부분은 입대한지 10여일 만에 3대대 3중대 소속 학병 27명만 남기고 북중국(北中國)으로 떠났다. 이때 27명 속에 잔류하게 된 그는 문한우(文漢雨) 등과 함께 학병항쟁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먼저 탄약고 폭파 및 무기탈취, 그리고 독극물로 일본군을 몰살한 후 집단 탈출 하여 국외로 나가 독립군 대열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였다.
그런데 이같은 무력항쟁 및 독살계획은 실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으므로 이들은 일단 집단탈출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거사일인 동년 8월 8일에 동지 6명은 탈출에 성공한 뒤 팔공산에 입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탐지한 일군경의 추격으로 그는 김복현과 조를 이루어 포위망을 뚫고 서울로 잠입하였다. 이때 다른 동지들은 안동역, 팔공산 등지에서 각각 붙잡혔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77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53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