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출신으로 박처사의진(朴處士義陣)에 소속되어 경북 예안·안동·영양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처사의진은 안동 출신의 의병장 박인화(朴仁和)가 이끄는 의병진으로 1907년 9월부터 1908년 5월까지 예안·안동·의성·영양·청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강영수는 1907년 음력 8월부터 1908년 음력 12월까지 박처사의진에 소속되어 의병활동을 펼쳤다. 박처사의 휘하에서 1907년 음력 8월 8일 동료 수십 인과 화승총을 휴대하고 예안군 선동면(宜東面) 원촌동(遠村洞) 동민 이병호(李昞鎬)로부터 돈 80냥, 명주 80척의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고, 1908년 음력 1월 20일경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갈전동(葛田洞)에서 동료 수십 명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동민 권이계(權伊溪, 일명 龍夏)로부터 돈 15냥을 모집하는 등 예안·안동·영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1908년 음력 12월 7일 안동군 임동면 동산리 부근 산중에서 의병장 박처사의 명령에 의하여 다른 2명과 함께 동군 부내면(府內面) 문내리(門內里) 김봉선(金鳳先)을 총살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영수는 1912년 4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强盜) 및 모살죄(謀殺罪)로 기소되어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547~5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