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 장단(長端) 출신으로 박종환의진(朴宗煥義陣)에 참여하여 장단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박종환은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하고, 허위(許蔿)를 군사장(軍司將)으로 하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가하였던 김규식부대(金奎植部隊)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규식은 안동 임하(臨河) 출신으로 대한제국의 육군 참위(參尉)로 근무하던 중,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철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규식은 황해도 장단에서 창의하였던 의병장 김수민(金秀民), 경기도 연천에서 창의했던 의병장 허위 등과 연계하여 경기도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연기우(延基羽)와 함께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하여 실질적인 전투부대로 활동하다가 연기우와 함께 탄환을 맞고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박종환은 경기도 장단에서 500여 명으로 편성된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의병 500여 명과 김수민이 이끄는 900여 명, 그리고 장단군에 산재하여 활동하고 있던 1,200명 등 모두 2,00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며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당시 적성·마전(麻田) 사이에 있던 허위의 지휘를 받기도 했으나, 철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보개산(寶盖山)에서 활동하던 김규식부대에 투신하였다.
박종환은 1907년 9월 13일 1908년 1월 6일까지 철원의 보개산·마전·장단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13도창의대진소에 합류하기 위해 1908년 2월 11일 의병을 장단에 분산·배치하였다.
강대여는 1908년 2월 박종환의진에 투신하여 의병 60여 명과 함께 장단군 각처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강대여는 소위 내란죄(內亂罪) 기소되어 1908년 9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는데, 상고하여 1908년 11월 10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5) 88~93면
- 判決文(大審院:1908. 11, 10)
- 判決文(京城控訴院:1908.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