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0~11월
1926년 11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후한민(胡漢民)은 1912년 신규식(申圭植)이 한중 양국의 우의 및 한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한 신아동제사에 참여하였다. 신아동제사는 상하이에서 조직된 동제사를 모체로 했으며 한국과 중국의 혁명 지사들이 함께 모여 조직한 단체였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선포는 신아동제사의 활동에 힘입은 바가 컸다.
1919년에는 한국과 중국의 유력자들이 모여 흥국실업은행을 창립했는데, 이는 한중 양국의 친선을 실업 제휴를 통해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1921년 10월부터 11월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신규식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문제로 호법정부 대총통 쑨원(孫文)을 만났다. 이때 그는 호법정부 비서장으로 배석해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정부 승인과 한국독립운동의 당위성에 대하여 후한민은 “한국은 동아의 ‘발칸’으로 한국문제가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아세아주(亞細亞州)의 시국대세가 균형을 잃어 동아의 평화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1926년 11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데려온 한국 청년 10여 명이 황푸군관학교에 입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황푸군관학교는 1924년 1월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중국 혁명에 필요한 군사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국인은 1925년 7월 제3기부터 입학이 허용되었다.
1931년 경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趙素昻)을 면담하여 한중연대를 통한 대일항전을 계획하기도 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한국독립운동(資料韓國獨立運動)(추헌수, 1971) 제2권 3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별집 제2집 397면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1971) 255면
- 한국혼(韓國魂)(신규식 저, 민필호 편, 1971) 128면
- 중국호법정부승인(中國護法政府承認) 한국임시정부(韓國臨時政府) 시말실기(始末實記)(독립기념관 소장)
- 자료한국독립운동(資料韓國獨立運動)(추헌수, 1971) 제1권 98면
- 독립신문(獨立新聞)(1919. 11. 15)
- 사진: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