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천치메이(陳其美)는 1912년 중국혁명동맹회 인사로서 신아동제사에 몸담았다. 신아동제사는 중국의 혁명인사들이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협조했던 1910년대 초 최대의 조직이었다. 아울러 이를 기반으로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수립과 선포가 가능했다고 평가받는다.
천치메이의 조카인 천궈푸는 그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신아동제사 조직에 관하여 “숙부는 한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한국 혁명지사들과 상하이(上海)에서 비밀단체인 ‘신아동제사’를 조직하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한 “숙부는 약소민족에 대한 동정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1912년 말, 숙부가 해외 공·상업 시찰을 원하자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여비 명목으로 4만원을 상하이로 송금하였다. (중략) 대부분은 동지들을 위해 사용하였고 5분의 1, 즉 8천 원 정도는 한국·월남·인도의 혁명당원에 대한 지원과 중국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학생들의 학비 등으로 지출되었다”고 하면서 천치메이가 한국독립운동과 재중 한국인들에 대해 쏟았던 애정을 술회하였다.
민필호(閔弼鎬) 역시 신아동제사가 한국과 중국 “두 나라 혁명지사들을 연계시키는 중추기관”이었다고 하면서 그 조직에 천치메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렇듯 한국 측 주요 지사와 교류하며 항일 독립투쟁을 지지하던 천치메이는 1916년 5월 18일 상하이에서 괴한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개벽(開闢)(1925. 8. 1) 제62호 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별집 제2집 397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8) 제22권 107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9) 제35권 381면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1971) 255면
- 한국혼(韓國魂)(신규식 저, 민필호 편, 1971) 128면
- 독립신문(獨立新聞)(1919. 10. 14)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