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장췬(張群)은 1930년대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중국 침략에 따른 한국인 탄압과 관련하여 일본 당국과 협의를 진행하였다. 1935년 일본군과 일제 만주국군이 치하얼성(察哈而省)의 구위안(沽源)과 두스커우(獨石口) 일대로 침공했을 때, 일본 측과 여덟 차례에 걸친 대일 회담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침공 이유를 중국 측의 대일친선 우호정책의 결여라는 지극히 억지스러운 명분을 제기하였다. 일본이 침략행위 직후 중국 측에 내세운 요구사항은 1. 일본 비행기의 항행 자유, 2. 관세 인하, 3. 한국인의 비법(非法) 행동 단속, 4. 일본인 고문의 채용, 5. 배일(排日) 언동의 단속이었다.
일제는 이러한 다섯 가지 요구조건을 배경으로 추후 중국이 이른바 배일주의 단속을 어떻게 시행하는 가를 주시하겠다면서 협의를 일단락 지었다. 장췬은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일본 당국의 항일 한국인 문제를 원론적인 수준에서 동의했지만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의 교류를 지속하였다.
또한 일본군으로 동원되었다가 포로가 된 한국인 청년들의 업무도 맡았다. 1945년 중국 국민당 정부 군사위원회에서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적(韓籍) 포로 활용에 관해 각 지역의 행영(行營) 주임과 전구 사령장관에게 전문을 하달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정부가 각 수용소에 수감 중인 한적 포로에게 공작을 맡길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사전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접촉할 것을 청”하고, “포로수용소에 수감 중인 한적 인원에게 공작을 맡길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통지”토록 되어 있었다. 당시 청두(成都) 겸 쓰촨성(四川省) 정부 주석을 맡으면서 위와 관련된 업무 수행에 적극 협력한 장췬의 활약은 중국 내 한국인들의 항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 항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삼천리(三千里)(삼천리사, 1938. 5. 1) 제10권 제5호 156~157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제10권 192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제40권 4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