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리우용야오(劉詠堯)는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1기 보병과를 졸업했다. 중일전쟁 이후 후난성(湖南省) 항일자위군(抗日自衛軍) 부총사령(副總司令) 겸 군관구(軍管區) 부사령(副司令)과 군사위원회 위원장 시종실(侍從室) 제3처 부주임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했을 때 김구(金九)·이범석(李範錫) 등과 친교를 맺고 한국광복군의 승인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광복군은 창설 직후 중국 군사위원회의 인준 없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국민당 정부는 한국광복군의 군사 조직 개편과 징모분처(徵募分處) 설치 등 제반 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1940년 말 중국군사위원회는 각지의 군사장관들에게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엄격히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민당 정부의 주쟈화(朱家驊)를 창구로 하여 한국광복군 승인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였다. 주쟈화는 한국광복군의 추인을 건의하고 함께 항일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리우용야오는 국민당 군 내부에서 본인의 직위가 위태로울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광복군 활동을 지지했던 것이다.
1941년 5월에는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2청 청장, 1942년 1월에는 국민당 중앙조직부 조직위원, 1943년 5월에는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1청 청장 등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활동에 다대한 공헌을 하였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1983) 1154면
- 한국광복군과 중국군사위원회와의 관계(한시준, 국사관논총 47, 1993)
- 한국광복군(김광재, 독립기념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