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다이리(戴笠)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출신으로 1917년 절군(浙軍) 제1사단에 들어가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26년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6기로 입학한 뒤 국민당에 가입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당시 장제스(蔣介石)의 명령에 의해 황푸군관학교 출신자들을 모아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 즉 남의사가 설립되었을 때 주요 간부로 임명되었다. 남의사는 1931년 제1차 국공합작 당시 중국 국민당 내 우파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단체였다. ‘남의(藍衣)’라는 이름은 국민당의 남색 제복에서 유래하였다.
장제스의 반공노선을 지지하면서 중국공산당과 국민당 내부의 좌파 감시 업무 역할을 맡았다. 장제스의 총애를 받아 특무조직을 관리하면서 친일 군인 및 정치가 그리고 장제스와 대립하는 야당의 활동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비밀공작을 수행하였다.
1937년 난징군사위원회(南京軍事委員會) 특무대(特務隊) 수장으로 있으면서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였다. 1942년 말부터 다이리·천리푸(陳立夫)·천궈푸(陳果夫) 등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협의하여 매달 중국 달러 6만불을 지원하기도 했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의 군사정보 수집공작을 위해 ‘한국정보소’를 설립하고 이듬해 1월 한국정보소를 개편한 한국구국단 설립 당시에도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군사통계국) 책임자를 맡고 있으면서 한국광복군을 후원하였다. 1945년 6월 경에는 한국 청년들을 훈련시킬 훈련센터를 청두(成都)에 마련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치안상황(治安狀況)(1937. 10. 15, 10. 22, 11. 5)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9) 제13권 81~82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9) 제25권 89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9) 제26권 131면
- 중국(中國) 안의 한국독립운동(韓國獨立運動)(호춘혜, 1978) 102~1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