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뤼텐민(呂天民)은 일찍이 신규식 등 한국 인사들과의 친분으로 신아동제사에 참여하며 한국 독립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협의해 나갔다. 신아동제사는 중국의 혁명인사들이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협조했던 1910년대 초 최대의 조직이었다. 아울러 이를 기반으로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수립과 선포가 가능했다고 평가받는다.
1920년 8월 미국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지지했던 장캉후(江亢虎)가 귀국했을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마련한 환영회에 참석하여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약속 했다. 1921년 중화전국가계연합회에서는 윈난(雲南) 대표로 출석하여 동아의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한국독립을 원조해야 한다는 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호법정부에게 정부로서의 공식 승인과 독립운동 원조 등을 요청했을 때, 호법정부의 내정부장으로서 관련 내용을 함께 협의하고 원조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0) 제39권 131, 144~145면
- 중국호법정부승인(中國護法政府承認) 한국임시정부(韓國臨時政府) 시말실기(始末實記)(독립기념관 소장, 1942)
- 매일신보(每日申報)(1914. 4. 15)
- 독립신문(獨立新聞)(1921. 1. 1)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5.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4권 108~109면
- 1920년대 한·중연대 항일운동(이현희, 국사관논총 1집, 국사편찬위원회, 1989)
- 사진: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