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運動) 에 가담하여 일본경찰의 수배자로서 중국 (中國) 상해 (上海) 로 망명하였다가 1920년에는 상해에서 불란서로 유학한 이래, 1929년에는 파리에 고려통신사 (高麗通信社) 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 일제의 침략 (侵略) 을 비난하고 잔학상 (殘虐狀) 을 국제사회에 전파하고 불어 (佛語) 로 한국역사소설인『어느 한국인의 삶과 주변』을 저작하고 그 안에 3.1독립선언문 (獨立宣言文) 을 실어 서방권에 알렸으며, 1935년에는 주불 (駐佛) 외무행서 (外務行署) 외교특파원으로 선임되고, 1945년에는 임시정부 (臨時政府) 주불 (駐佛) 예정대사 (豫定大使) 로 임명되는 등 임시정부의 외교업무에 기여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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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부산(釜山) 사람이다.
1919년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한 뒤 일본 경찰의 검거망을 피해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이듬해인 1920년 다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29년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고려통신사(高麗通信社)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 주불통신원(駐佛通信員)으로 근무하면서 유럽 각국의 언론기관과 연락을 취하며 일제의 침략과 잔학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고발하였다. 또한 한국역사소설인 『어느 한국인의 삶과 주변』을 불어(佛語)로 저작하고 그 내용 속에 「3·1독립선언문(三一獨立宣言文)」을 삽입하여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서방세계에 알렸다.
1935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불외무행서(駐佛外務行署) 외교특파원(外交特派員)으로 선임되어 유럽 각국의 요인들에게 우리의 정세를 널리 선전하고 한국 독립에 대한 동정과 원조를 요청하였으며, 1944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산하의 주불예정대사(駐佛豫定大使)로 임명되어 유럽 각국을 상대로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45년 3월 프랑스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외교관계 수립을 요청하자, 같은 달 12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임시정부 주불대표(駐佛代表)로 선임되는 등 25년 동안 임시정부의 외교업무와 독립운동 선전에 지대한 공적을 쌓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민족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11집 530·567·568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8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858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1집 529면
- 한국사학논총(서암조항래교수 화갑기념한국사논총간행위원회, 1992) 駐파리위원부의 유럽 외교활동에 관한 연구(정용대) 7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