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광주농고 재학중, 1926년 11월 3일에 조직된 항일학생결사 성진회(醒進會) 회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동회는 광주고보·농고생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조국의 독립·사회과학연구·식민지노예교육 반대 등을 기본 강령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회원은 매월 제1·3토요일에 모여서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사회과학을 통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회원 중 이반자가 생겨 기밀누설의 위험이 있었으므로 1927년 3월 동회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동회의 해체는 형식적이었을 뿐으로 주동학생들의 활동은 계속되어 나갔다. 그리하여 그는 1928년 2월에 졸업을 앞두고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소재 지용수(池龍洙) 집에서 임주홍(林周弘)·최규창(崔圭昌)·김광용(金匡溶)·문승수(文升洙) 등 성진회 주동학생들과 모임을 갖고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고 계속 성진회의 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의하였다 동년 3월 동교 졸업 후 그는 군농회 기수(郡農會 技手)로 근무하면서 동회의 목적을 위해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시위 후 성진회 관련으로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일경의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8면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면
- 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