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238
성명
한자 金旻煥
이명 金仁守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26. 11. 3 광주농교 재학중 항일을 목적으로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고 학생항일운동을 실행하였으며 졸업후에도 계속 활동하다 일경에 피검되어 징역 1년형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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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광주농고 재학중, 1926년 11월 3일에 조직된 항일학생결사 성진회(醒進會) 회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동회는 광주고보·농고생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조국의 독립·사회과학연구·식민지노예교육 반대 등을 기본 강령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회원은 매월 제1·3토요일에 모여서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사회과학을 통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회원 중 이반자가 생겨 기밀누설의 위험이 있었으므로 1927년 3월 동회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동회의 해체는 형식적이었을 뿐으로 주동학생들의 활동은 계속되어 나갔다. 그리하여 그는 1928년 2월에 졸업을 앞두고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소재 지용수(池龍洙) 집에서 임주홍(林周弘)·최규창(崔圭昌)·김광용(金匡溶)·문승수(文升洙) 등 성진회 주동학생들과 모임을 갖고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고 계속 성진회의 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의하였다 동년 3월 동교 졸업 후 그는 군농회 기수(郡農會 技手)로 근무하면서 동회의 목적을 위해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시위 후 성진회 관련으로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일경의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8면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면
  • 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민환 김인수(金仁守), 호 : 단우(丹宇) 경상북도 경주(慶州) -
본문
1910년 6월 20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서면(西面) 대곡리(大谷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단우(丹宇), 이명은 김인수(金仁守)이다. 1926년 광주농업학교에 재학 중, 11월 3일경 항일 학생 결사 성진회(醒進會)가 결성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성진회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한국 독립 쟁취·사회과학 연구·식민지 노예 교육 반대·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요구 등을 기본 강령으로 하였다. 또한 매월 제1·3주 토요일에 모여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사회과학을 통한 식민 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였으나 1927년 2~3월경 잠정 해산하였다. 1927년 11월 광주농업학교 학생인 김복만(金福萬)·김재룡(金在龍)·문승수(文升洙)·유상걸(柳上杰)·유치오(兪致五)·정동수(鄭東秀)·주당석(朱唐錫) 등이 김태호(金台鎬)의 집에 모여 문승수가 ‘사회과학 연구’를 제안하자, 참석자들은 제안에 찬동하였다. 1928년 2월 11일 졸업을 앞두고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 지용수(池龍洙)의 집에서 김광용(金匡溶)·문승수·박무길(朴武吉)·유치오·이동선(李東宜)·임종근(林鍾根)·임주홍(林周弘)·정귀석(鄭貴錫)·정종석(鄭鍾奭)·주당석·최규창(崔圭昌)·하의철(河誼喆) 등 성진회 출신 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고, 계속 성진회의 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모임의 취지는 성진회 회원 중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졸업하면 사회주의 연구 지도자를 상실하게 되므로 그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중 광주농업학교의 후계자로는 유치오와 주당석이 선임되었다. 1928년 3월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군농회(郡農會) 기수(技手)로 근무하면서 성진회의 목적을 위해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항일운동에 성진회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받고 항소하였다.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경주의 이덕윤(李德潤)상점에 점원으로 근무하여 1936년 6월 2일 경주상공회(慶州商工會)에서 근속자에게 수여하는 표창을 받았는데 5년 근속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광주지법 공판에 부침 광주지방법원 1930-07-17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광주지법 공판에 부침 광주지방법원 1930-07-26 국가기록원
3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2년 미결구류일수 80일 본형에 산입 광주지방법원형사부 1930-10-27 국가기록원
4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1년 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에 산입 대구복심법원형사제1부 1931-06-13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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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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