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9월 부산 (釜山) 에서 김두현 (金斗鉉) 김두옥 (金斗玉) 박치오 (朴致悟) 등과 같이 제2차 (次) 독립운동 (獨立運動) 을 목적 (目的) 으로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여 중국 (中國) 상해 (上海) 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에서 송부 활동 (送付活動) 을 하고 있을 때 중앙학림 (中央學林) 박치오 (朴致悟) 로부터 독립신문 (獨立新聞) 과 경고문 (警告文) 을 받아 강우석 (姜佑錫) 박만길 (朴萬吉) 에게 배포 (配布) 하며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도록 하고 활동 (活動) 하다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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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양산(梁山) 사람이다.
1919년 9월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각지의 부자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여 중국 상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송부하는 동시에, 한면에는 '태극기(太極旗)와 독립기념'이라 새기고 한면에는 '민국원년(民國元年)'이라 새긴 50전짜리 은메달을 제시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던 김두현(金斗鉉)·김두옥(金斗玉)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중앙학림(中央學林) 박치오(朴致悟) 승려로부터 〈독립신문(獨立新聞)〉과 경고문을 받아 강우석(姜佑石)·박만선(朴萬善)에게 건네주며 활동 하다가 동지 13명과 함께 1921년 5월 12일경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21년 5월 3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4卷 609面
- 東亞日報(1921. 5. 14)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597∼59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