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남 목포(木浦)에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전남 목포에서는 2.8독립선언에 참가하고 돌아온 남궁혁(南宮赫) 등 학생측과 일찍이 미국 장로교가 전파되어 예수교의 기반이 닦여진 예수교측이 각기 독자적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예수교 측은 당시 목포지역에서 신망이 두텁고 독립 선구자로 알려진 서상봉(徐相鳳)을 비롯하여 목사 곽우영 등이 거사를 계획하였다. 서상봉, 곽우영 등은 교인, 학생들에게 연락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드는 한편, 박상렬, 남궁혁 등 학생 청년들과도 연락을 취하였다.
1919년 4월 8일, 곽우영을 비롯한 예수교인들과 남궁혁 등 학생 청년들은 각자 선언서, 경고문, 태극기를 집집마다 배포하는 한편, 시내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곽우영 등 8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곽우영은 1919년 6월 1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裁判所)
- 東亞日報(1923. 4.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609~611면
- 한민족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88) 3권 3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