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음력 6월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
여, 회원을 모집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원조를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음력 6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기독교회 전도조사(傳道助事)의 회합에
참여하였던 이주상(李周庠), 허원삼(許元三), 김양숙(金良淑) 등과 함께, 동년 6
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하여 조선의 독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유한선(劉漢
先) 등이 광주에서 조직한 대한국민회에 유한선의 권유로 가입하였다. 유한선은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소재한 사립(私立)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로서, 평양(平壤) 국민회원 장공섭(張公燮)이 동교로 송부한 ?국민회취지서
(國民會趣旨書)?라는 제목 하의 "국가는 민족으로부터 성립하는 것으로 우리 조
선은 민주정치가 성립함에 따라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원조를 위해 국민회를
조직해 회원으로부터 회비를 모집할 것", "1920년 3월에 이르러서는 세계 열강
으로부터 조선독립의 원조를 받아 임시정부가 대활동을 할 것"이라는 요지 및
?국민회규약서(國民會規約書)?라는 제목 아래 "국민회를 나누어 향촌회(鄕村
會), 부군회(府郡會), 면민총회(面民總會)의 3개로 하여 25세 이상의 남자 회원
에게 회비를 모집한다"는 요지의 문서를 보고 취지에 찬동하여 회원과 회비를
모집하던 터였다. 이들 단원은 동 취지서 및 규약서에 의거하여 7월부터 10월에
이르는 동안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하
였다.최종렬은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1919년 음력 7월 10일 유한선을 안내하여 나주
군(羅州郡) 산포면(山浦面) 구등리(溝嶝里)의 서금덕(徐今德) 집에서 동인 외 3
명을, 또 동면 등수리(等樹里) 김황규(金黃奎) 집에서 동인과 서영선(徐永先)을
국민회에 가입토록 하고, 이상의 6명의 회원에게서 11원의 자금을 모집하여 유
한선에게 전달하였다. 동년 음력 8월 중 나주군 남평읍(南平邑) 기독교회당으로
유한선을 안내하여 3, 4명의 사람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 원조를 위한 보조금 모
집 방법을 권유하였다.
1919년 12월 22일 체포되어 1920년 4월 17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의 원
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192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
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6
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身上標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0. 6. 21)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20. 4. 17)
- 秘密結社 國民會員 募集者 및 不穩文書 配布者 檢擧에 관한 건(1920. 1. 22)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5)
- 每日申報(1920. 1. 14)·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2002) 제38권 2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