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남경지구(南京地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61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551·617면
| 관리번호 | 8745 | ||
|---|---|---|---|
| 성명 |
|
한자 | 尹太勳 |
| 이명 | 尹泰勳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
충북 청원(淸原)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남경지구(南京地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
| 1 | 윤태훈 | 윤태훈(尹泰勳) | 충북 청원(淸原) | - | |
| 본문 |
1914년 3월 26일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북일면(北一面, 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내수리(內秀里)에서 태어났다. 1944년 9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있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5년 2월 광복군 소속의 남경지구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1942년 중국으로 건너가 산시성(山西省)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작원 이규상(李圭尙)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서 1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활동하다가, 1944년 9월에 안후이성에 있는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1940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총사령부와 지대, 징모처 등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2년 각 지대를 통합 또는 조정하였는데, 기존의 징모 제6분처를 발전시켜 제3지대로 편성하였다. 본래 징모 제6분처는 김학규(金學奎)를 중심으로 안후이성 푸양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활발한 초모활동 결과 징모 제6분처의 인원이 크게 증가하자, 광복군 총사령부는 징모 제6분처를 제3지대로 개편하고 김학규를 초대 지대장으로 임명하였다.제3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도 합작하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초모·선전·첩보·훈련 등의 영역에서 광복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1월부터 광복군 제3지대에 소속되어 난징지구(南京地區)에서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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