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9월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지구(長沙地區)에 주둔 중 광복군으로 입대하기 위하여 1944년 12월에 일본군을 탈출한 후 광복군총사령부 경호대(토교대)에 입대한 바 있어 종전 무렵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국군으로서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확인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관리번호 | 8133 | ||
|---|---|---|---|
|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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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南炫 |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1 | 훈격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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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지구(長沙地區)에 주둔 중 광복군으로 입대하기 위하여 1944년 12월에 일본군을 탈출한 후 광복군총사령부 경호대(토교대)에 입대한 바 있어 종전 무렵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국군으로서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확인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
| 1 | 박남현 | - | 전남 광주(光州) | - | |
| 본문 |
1924년 10월 21일 전라남도 광주부(光州府) 누문정(樓門町, 현 광주광역시 북구 중앙동)에서 태어났다. 광주농업학교를 중퇴하고 과수원을 경영하며 야학을 개설하여 기초적 소양을 가르치는 한편 항일의식을 배양하였다.1944년 강제 징집되어 중국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로 향하던 중, 1944년 12월 20일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 유격대에 합류해 유격전에 참전하였다. 일본군 문서 번역과 일본군 포로 심문 등에도 참여하였다.1945년 4월 20일 충칭(重慶)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여 의무책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 한인교포들의 신변 보호와 귀국 지원에 참여하다가, 1946년 귀국하였다.귀국 후 광복청년단 전남도단 교관, 대동청년단 광주 북구단 등 광복군 계열 청년단체의 지역 간부를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광복회 전라도지회 사무장과 선전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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