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2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총사령부(總司令部) 경위대(警衛隊)·중경토교(重慶土橋)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관리번호 | 53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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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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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完圭 |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63 | 훈격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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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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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완규 | - | 평북 정주(定州) | - | |
| 본문 |
1922년 5월 14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에서 태어났다.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 12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총사령부에 입대하였다. 이 무렵 한국광복군 입대를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치한 충칭(重慶) 인근의 토교(土橋)로 이동하여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였다. 토교대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한국인이나 한국광복군 훈련반 출신, 중국군의 포로가 된 한적 사병들이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으로 모여들자 이들을 일정기간 동안 토교에 임시적으로 집단 수용하면서 편성된 임시 조직체였다.
토교대 대원들은 이곳에서 군사훈련과 교육을 받고 광복군 총사령부 경비 및 고위인사의 호위, 광복군 기간 간부 및 건국 후의 국군 사관 요원의 양성, 일본군 내 한인 청년 탈출 공작, 기타 총사령부의 지시에 의한 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토교에는 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의 가족들도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토교대의 대원들이 이들을 보호하고 민사업무도 수행하면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보조하였다. 1945년 토교대에서 복무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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