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서주지구(徐州地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7·35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35면
| 관리번호 | 4148 | ||
|---|---|---|---|
| 성명 |
|
한자 | 李斗天 |
| 이명 | 李斗千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서주지구(徐州地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
| 1 | 이두천 | 이두천(李斗千) | 평남 평원(平原) | - | |
| 본문 |
1923년 5월 15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두천(李斗千)이 있다. 1945년부터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에 들어가 쉬저우에서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1940년 9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에 광복군이 창설되었다. 광복군은 지대를 편성하고 그 외에 모병기구로서 징모처를 두었다. 창설 초기 징모처는 제1분처, 제2분처, 제3분처, 제5분처, 제6분처가 있었는데, 이 중 제6분처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하여 오광심(吳光心)·신송식(申松植)·서파(徐波) 등 8명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푸양은 일본군 점령지역과 근접한 지역이며, 중국군 제10전구 사령부와 중국중앙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의 후신) 제10분교와 가까운 곳이었다. 제6분처는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공작 활동을 통해 학도병이나 한인들을 모집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적극적인 초모 활동으로 징모 제6분처의 인원이 크게 증가하자 광복군 총사령부는 제6분처를 제3지대로 개편하였다. 제3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도 합작하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초모·선전·첩보·훈련 등의 영역에서 광복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쉬저우지구(徐州地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달 국내정진교육훈련반에 편입하여 국내 진공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이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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