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이 침탈되자 그는 부친 이회영(李會榮)을 따라 일가 친척 60여 명과 함께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堡)로 이주하였다. 그는 부친 이회영과 숙부 이시영(李始榮) 등이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설립하자 이 학교를 제3기생으로 졸업한 후 독립군 양성에 헌신하였다. 1917년에는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청각(聽覺)이 손실되기도 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난 뒤에는 부친을 따라 일가족이 다시 북경(北京)으로 이주하였다.
1925년에는 다시 상해로 옮겨 임시정부의 일을 도왔으며, 1932년 윤봉길 의거 뒤에는 임정요인들의 신변 안전을 도와 항주(杭州) 등지로 피신시키는데 협력하였다. 같은 해에 부친 이회영은 만주에 독립운동 근거지 마련 및 주만(駐滿) 일군사령관을 암살할 계획으로 대련(大連)으로 가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사 순국하였다.
이후 그는 임시정부의 연락업무 등을 위해서 중경(重慶), 상해(上海)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3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