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그는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를 졸업한 후 청리공립보통학교(靑里公立普通學校)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안중근(安重根) 의사를 기리는 노래를 가르치는 등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1926년 8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고향에서 형인 이만근(李萬根)과 함께 유봉조(兪鳳祚)·김재홍(金在洪) 등의 청년들을 규합하여 항일독립을 목적으로 산내청년회(山內靑年會)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유봉조에게 보낸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편지가 일경에 발각됨으로 인해 일경에 붙잡혔다. 이일로 인하여 1927년 10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30년 중외일보(中外日報) 기자로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산하 경주청년동맹의 집행위원장이 되었으며, 1927년 2월에 결성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의 경주지회(慶州支會)를 조직하여 선전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농민회(農民會)를 결성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그러던 중 일경에 붙잡혀 1930년 7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동년 9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98·299면
- 판결문(1927. 10. 25 대구지방법원)
- 판결문(1930. 9. 25 대구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