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북 진천(鎭川) 사람이다.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하여 중경(重慶)에 있는 토교대(土橋隊)에 배속되어 임시정부 요인들의 경호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안전 등을 위해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609면
| 관리번호 | 33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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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
한자 | 吳相根 |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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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鎭川) 사람이다.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하여 중경(重慶)에 있는 토교대(土橋隊)에 배속되어 임시정부 요인들의 경호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안전 등을 위해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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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오상근 | 수봉(隨峯) | 충북 진천(鎭川) | - | |
| 본문 |
1924년 1월 25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백곡면(栢谷面) 성대리(城大里)에서 4남 2녀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호는 수봉(隨峯)이다. 백곡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청주에 있는 충청북도 농민실천소에 입학하여 1년간 농과기술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우체국 직원, 면서기로 일하던 중 1943년 9월 25일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평양 육군 제42부대에서 일주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중국 지난(濟南)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일본군 보병 제108연대 제12중대에 편입되었으며, 지난 도착 후 일본군 북지파견군 제59부대 예하 부대에 배속되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사격과 제식 등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지난에서 이동해 난징(南京)·우창(武昌)·한커우(漢口)·창사(長沙) 등지 전선에 투입되기 위해 이동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서 초모공작과 선전을 목적으로 비행기로 뿌린 전단지를 통해 충칭(重慶)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에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에 입대하고자 같은 부대였던 신인식(申仁植)·유재복(柳在福)과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였다.1944년 12월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에 도착하여 토교대(土橋隊)에 배치되었다. 토교대는 충칭 인근 투치아오(土橋)에 위치했던 광복군 조직체로 당시 일본군을 탈출하던 학병들과 탈출병들, 한적(韓籍)사병들을 임시적으로 집결시키고자 설립한 부대였다. 토교대에서 대원들은 일정 기간 교육·훈련을 받고 광복군 총사령부·지대·경위대 등으로 배치되었다. 이곳 토교대에 들어간 후 광복군 총사령부 경비와 임시정부 요인 호위, 광복군 기간 간부와 장차 건국 후 국군 사관 요원 양성, 일본군 내 한적사병에 대한 탈출 공작, 기타 총사령부 지시에 따른 공작 수행 등의 임무를 이행하고자 훈련받았다. 토교대 훈련을 마친 후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警衛隊) 2중대 5분대에 배속되었다. 경위대에서는 임시정부 경비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호위를 맡았다.충칭에서 광복 소식을 들은 지 1년여 만인 1946년 6월에 충칭에 남아있던 광복군 요원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귀국 후 진천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광복군 충북도지부장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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