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6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第三支隊)에 입대하고, 국내정진교육훈련반(國內挺進敎育訓練班)에 편입한 사실이 확인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관리번호 |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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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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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基俊 |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63 | 훈격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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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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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강기준 | - | 평안북도 창성(昌城) | - | |
| 본문 |
1921년 3월 17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봉천리(峯泉里)에서 태어났다.
1945년 6월,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 한국인 청년들을 모집하여 광복군 입대를 권유하고, 광복군 대원을 확충하고자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의 탈영을 도모하는 초모 공작을 전개하였다. 당시 광복군 제3지대는 지대장 김학규(金學圭)의 지휘 아래 중국 화북과 화중, 화남 지역에 첩보 조직을 구성하여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고, 연합군과 현지 중국 유격대에 연락하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고 있었다.
광복 후 중국 허난성(河南省) 카이펑(開封) 지구 특파단에 선발되어 활동하였다. 당시 제3지대는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던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카이펑·지난(濟南)·칭다오(青島)·쉬저우(徐州) 등지에 특파단을 파견하였다. 카이펑 지구 특파단의 단장은 제3지대 제2구대장 박영준(朴英俊)이었으며, 부단장은 제3지대 제2구대 제2분대장 김재기(金在基, 뒤에 제1분대장 김문택으로 교체됨)가 맡았다. 특파단은 교민의 안전과 지역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일본군 내의 한인 사병을 인수하여 광복군에 편입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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