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第三支隊)에 입대하였고 1945년 6월 국내정진교육훈련반(國內挺進敎育訓練班)에 편입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관리번호 | 2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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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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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吉昌一 |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 본적 | |||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63 | 훈격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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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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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길창일 | - | 평안북도 선천(宣川) | 광복군, 국내정진교육훈련반 | |
| 본문 |
1920년 1월 29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읍(宣川邑) 황금정(黃金町)에서 태어났다. 중국으로 건너가 생업을 위해 상업에 종사하였다. 후일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에 입대한 것으로 보아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 인근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 9월 조직된 한국광복군은 지대를 중심으로 초모 공작을 통한 대원 확보에 노력하였다. 특히 1942년 6월경 안후이성 푸양에 설치된 징모 제6분처는 초모 분처와 전방을 왕래하면서 첩보·선전·공작 등을 전개하는 등 공작원 사이의 유기적인 협조가 이루어졌다. 1944년 미군의 지원으로 전황이 호전되자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도 한국광복군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분위기였다. 지대장 김학규(金學奎)는 초모 공작의 조직 확대와 강화를 위하여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한광반) 출신들을 각지로 파견하였다. 초모 공작을 활발히 벌인 결과로 입대자가 늘어나자 징모 제6분처는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로 개편되었다.
1945년 5월경에 공작원의 권유에 따라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무전기를 이용한 첩보 작전 수행을 위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국내정진교육 훈련반에 편입하여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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