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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G_NO>950558</MNG_NO>
<NAME_KO>권원석</NAME_KO>
<NAME_CH>權元石</NAME_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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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미상</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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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DAY>1908-12-19</LAST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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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남</SEX>
<REGISTER_LARGE_DIV>미상</REGISTER_LARGE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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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_YEAR>2003</JUDGE_YEAR>
<HUNKUK>애국장</HUNKUK>
<WORKOUT_AFFIL>의병</WORKOUT_AFFIL>
<ACHIVEMENT>1908년 11월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水入面) 수귀동(守貴洞)에서 김상태(金尙台)의진과 연락하며 김상태를 숨겨주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김상태는 동지 정운경(鄭雲慶)과 함께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7년 이강년의 의진과 합세하였다. 김상태는 1908년 이강년이 붙잡힌 후 그의 군사지휘권을 인계받아 단양(丹陽)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적의 세력이 더욱 치열해짐에 의병을 이끌고 소백산중으로 들어가 계속하여 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일본군과 교전한 것이 무려 50여 회에 달하였다.  권원석은 이때 김상태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집에 와 있던 일본군 금성(金城) 수비대에 의해 탐지되어 수비대와 격전을 벌이다 1908년 12월 19일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ACHIVEMENT>
<REFERENCES>
<REFERENCE>
<BOOK_NAME>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3輯 37·38面(暴徒에 관한 編冊 金秘 第56號의 1 1909. 1. 14)</BOOK_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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