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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G_NO>940735</MNG_NO>
<NAME_KO>김상옥</NAME_KO>
<NAME_CH>金相玉</NAME_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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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1880)</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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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DAY>미상</LAST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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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남</SEX>
<REGISTER_LARGE_DIV>충청북도</REGISTER_LARGE_DIV>
<REGISTER_MID_DIV>단양</REGISTER_MID_DIV>
<REGISTER_SMALL_DIV>소야 서주</REGISTER_SMALL_DIV>
<JUDGE_YEAR>2024</JUDGE_YEAR>
<HUNKUK>애족장</HUNKUK>
<WORKOUT_AFFIL>의병</WORKOUT_AFFIL>
<ACHIVEMENT>김상옥은 이강년 의진에 투신했다가 효율적인 유격전을 위해 소수 인원으로 분리되어 나온 박갑주(朴甲胄)의 휘하에 들어갔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박갑주를 중심으로 강원도･충청북도･경상북도 일대에서 김목여･정재철 등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13;
1908년 경상북도 순흥군과 충청북도 제천에서 군자금을 충당했다. 1908년 11월 이후에는 주로 제천군과 강원도 영월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제 군경과 누차 접전을 벌였다. 그 와중에도 1909년 2월 영월군 진전리에서 엽전 2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하지만 3월 2일 밤 제천군 북면 산봉우리 김목여의 집에 모임이 있다는 정보가 밀정에 의해 제천경찰서에 누설되고 말았다. 밤 10시경 잠복하고 있던 일제 ‘토벌대’와 접전을 벌이다가 간신히 도주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4시 체포되었다.&#13;
1909년 4월 1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강도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12년 12월 11일 사면되었다.&#13;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ACHIVEMENT>
<REFERENCES>
<REFERENCE>
<BOOK_NAME>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 : 1909. 4. 12)</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篇冊)</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4) 제13권 550~552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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