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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G_NO>8952</MNG_NO>
<NAME_KO>임국정</NAME_KO>
<NAME_CH>林國楨</NAME_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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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1896-09-21</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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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DAY>1921-08-25</LAST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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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남</SEX>
<REGISTER_LARGE_DIV>함경남도</REGISTER_LARGE_DIV>
<REGISTER_MID_DIV>함흥</REGISTER_MID_DIV>
<REGISTER_SMALL_DIV>咸興面 中荷里</REGISTER_SMALL_DIV>
<JUDGE_YEAR>1963</JUDGE_YEAR>
<HUNKUK>독립장</HUNKUK>
<WORKOUT_AFFIL>만주방면</WORKOUT_AFFIL>
<ACHIVEMENT>함남 함흥(咸興) 사람이다.&#13;
1919년 3·1독립운동후 만주로 망명하여 윤준희(尹俊熙)·한상호(韓相浩)·최이붕(崔以鵬) 등과 함께 철혈(鐵血)광복단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다시 남만에 본부를 두고 있던 북로군정서에 가담하였다.&#13;
그는 전기 동지들과 함께 간도 와룡동(臥龍洞) 김하석(金河錫)의 집에서 군자금 모집 방책을 상의했다. 그때 김하석의 말이 조선은행 회령지점(會寧支店)에서 동은행 용정(龍井)출장소로 수시 송금하는 터이니 그 날짜와 시간을 탐지하여 빼앗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여 이에 동조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1월 4일 윤준희·한상호·최이붕·김 준(金俊)·박웅세(朴雄世)와 함께 용정촌에서 현금 15만원을 획득하였다.&#13;
같은 달 9일 그 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톡(海蔘威) 신한촌(新韓村)으로 들어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 구입, 무관학교 설립 등을 계획하였다.&#13;
한편 그는 서성권(徐成權)을 회장으로 하는 간도청년단의 운동부장으로서 강백규(姜白奎)·이 광(李光)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다.&#13;
1920년 12월 일본경찰의 밀정인 엄인섭(嚴仁燮)의 밀고로 윤준희·한상호 등과 함께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13;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ACHIVEMENT>
<REFERENCES>
<REFERENCE>
<BOOK_NAME>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8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300·331·431·447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기려수필 307·308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622·624·625·626·627·628·630·631·632·633·634·637·639</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7·474면</BOOK_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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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BOOK_NAME>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899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97·298·299·300면</BOOK_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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