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standalone="no"?>
<ROOT>
<TOTAL_COUNT>1</TOTAL_COUNT>
<PAGE_COUNT>1</PAGE_COUNT>
<PAGE_INDEX>1</PAGE_INDEX>
<COUNT_PER_PAGE>1</COUNT_PER_PAGE>
<ITEM_COUNT>1</ITEM_COUNT>
<ITEMS>
<ITEM>
<MNG_NO>8274</MNG_NO>
<NAME_KO>박승학</NAME_KO>
<NAME_CH>朴承鶴</NAME_CH>
<DIFF_NAME/>
<BIRTHDAY>1919-10-03</BIRTHDAY>
<BIRTHDAY_SL_NM/>
<BIRTHDAY_EXT_NM/>
<LASTDAY>1978-09-04</LASTDAY>
<LASTDAY_SL_NM/>
<LASTDAY_EXT_NM/>
<SEX>남</SEX>
<REGISTER_LARGE_DIV>평안북도</REGISTER_LARGE_DIV>
<REGISTER_MID_DIV>정주</REGISTER_MID_DIV>
<REGISTER_SMALL_DIV>定州邑 城內洞</REGISTER_SMALL_DIV>
<JUDGE_YEAR>1990</JUDGE_YEAR>
<HUNKUK>애국장</HUNKUK>
<WORKOUT_AFFIL>광복군</WORKOUT_AFFIL>
<ACHIVEMENT>평안북도 정주(定州) 사람이다.
중국 남방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 환남참(晥南站) 및 연호조(燕湖組) 등과 협조하여 일본군의 주둔 위치와 소속부대병력 그리고 병력의 이동규모 등에 관한 군사정보의 수집보고 등 활동을 하였다. 또한 동지규합과 한적사병(韓籍士兵) 및 애국청년의 초모(招募)후송과 지하공작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하였다.
그후 충의구국총지휘 참모처의 주요 참모로 임명되어 한적 사병 10여명을 광복군에 입대시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ACHIVEMENT>
<REFERENCES>
<REFERENCE>
<BOOK_NAME>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6·317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44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
<BOOK_NAME>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57면</BOOK_NAME>
</REFERENCE>
</REFERENCES>
</ITEM>
</ITEMS>
</ROO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