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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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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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柳寬順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주소

공적정보

공적정보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62 훈격 독립장
공적개요 (원문) 한자보이기
1. 公州 永明女學校에서 수학한 뒤 예수교 公州敎會 婦人宣敎師의 주선으로 梨花學堂의 校費生으로 편입되었는바 高等科 1학년 때 삼일운동이 일어나서 京城에서 시위운동에 참가하였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와 학교로 순방하면서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고하고 각지의 교회와 유림계의 찬성을 얻어 三月一日(陰) 並川에서 수천명의 군중을 모아서 선창으로 만세시위를 指導하였는데 그의 부친 重權과 모친 李氏는 당시 왜적의 총에 犧牲되었고 金球應, 崔貞徹(蔡氏), 金常憲등은 同日 살해되고 寬順은 주모자로 피체되어 유치장에서 오빠 寬玉을 면접하였으나 아무 영문도 몰랐으며 적의 고문에는 자신의 처사였다는 것 뿐 일체 언급을 피하였음
2.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공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지내면서 옥중에서도 만세를 불렀음
3. 1920년 9월에 악형으로 옥중에서 殉死하니 때에 나이 18세의 소녀였음

*3·1운동의 상징으로 전 국민에게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일깨웠던 유관순 열사는 광복 이후에도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과 애국심 함양의 표상이 되어 민족정기 선양에 공헌하고, 비폭력·평화·민주·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 등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 공적으로 2019. 3. 1.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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