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39년 동기생인 인천공립상업학교(仁川公立商業學校) 27회 졸업생들과 함께 ‘오륜조’(五輪組)를 조직하여 창씨개명(創氏改名) 반대운동을 펼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43년 7월경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에 다니는 송재필(宋在弼)과 논의하여 일제의 강제 학병모집에 항거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결의문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일제가 인천상고 27회 졸업앨범 제작비를 전쟁성금으로 강요하자, 그는 이 사실을 졸업생들에게 알리며 반대투쟁을 전개하다가 충북 영동경찰서에 의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총 24명의 인천상고 졸업생이 체포되어 임시구류장에서 고문당했으며, 이중 가재연(서산 출신)·김여수(강화 출신)·정태윤(인천 출신)·고윤희(개성)·이기영(주안) 등이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1944년 6월 대전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1945년 3월 병보석으로 나오기까지 1년 8개월 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龜隱日記(1943) 第15號, 第16號
- 新東亞 (1978. 2, 朱樂元) 360면
- 仁高 90年史(인천고등학교 동창회, 1985) 189·190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미추홀(인천고등학교, 1972) 제16호 92면
- 追慕銘(1985, 仁川高校 校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