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37년 말경부터 서울 양정중학교(養正中學校) 재학 중
민족적 성격이 농후한 소설을 읽고 이듬해 2월 서주원(徐周元)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의 실행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서울 양정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7년 말경부터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심훈
(沈熏)의 <상록수(常綠樹)>, 이기영(李箕永)의 <고향(故鄕)>등 민족적 성격이 강
한 소설을 읽었다. 이듬해 2월 하순 동교의 동급생 서주원 등과 함께 이광수(李
光洙)의 <흙>을 읽고 조선의 농촌과 농민의 어려움을 통분스럽게 여기고, 그 원
인이 일제의 압정에 있다고 단정하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교우 관
계에 있던 동급생들을 규합하여 항일 비밀결사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강경석(姜璟錫)·이완익(李完益)·최창규(崔昌圭)·김학조(金學祖)·김
인석(金仁錫)·김상정(金相廷) 등이 참여하였다. 이후 경성부(京城府) 통의정(通義町) 자택 등에서 서주원 등과 함께 조선독립의 실행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
는데, 1941년 6월 30일 동지회 조직 사실이 들어나 모두 구속되었다.
1941년 7월 15일 인치되어 1942년 7월 7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육군형법(陸軍刑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10월 3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729면
- 抗日學生民族運動史硏究(鄭世鉉, 1978) 495-4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