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문태수(文泰洙)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문태수는 경남 안의(安義) 사람으로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한 후, 전북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에 전북 장수(長水)읍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다음해 1월에도 문태수 의진은 전북 무주군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서울 진공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각 도의 의병진이 모여 13도 창의군을 편성할 때, 문태수 의병장은 호남창의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명경안은 이같은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이용이(李用伊) 등과 함께 1909년 2월 5일 전북 용담에서 문태수 의진의 의병장 김상진(金尙鎭)의 부탁을 받고 화약 3근을 제조하고, 총 2정을 수리하여 공급하는 등 의병부대의 화력 지원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02·6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