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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관리번호 7680
성명
한자 金球應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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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1 훈격 애국장
1919.4.1 충남 천안군 갈전면 병천(竝川)장터에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운 후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낭독(朗讀)하고 독립만세(獨立萬歲)고창(高唱)하며 장터를 누비고 시위(示威)할 때 일군(日軍)들의 야만적(野蠻的) 기총 난사(機銃亂射)총살(銃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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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竝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니, 아우내 장터는 만세소리로 가득찼다.

시위군중이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시위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본 군경들이 주재소에서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며, 계속 발포하여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명 이상이 부상하는 일대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그도 적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는데, 일본 헌병은 잔인하게도 다시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 죽였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던 어머니 최정철(崔貞徹) 마저도 잔악무도하게 창칼로 찔러 순국케 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59·173·426·444·45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6·12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구응 - 충남 천안(天安) 병천면 만세시위
본문
1887년 7월 27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현 병천면) 가전리(佳田里)에서 출생하였다. 5세 때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7년 교육 구국 운동의 열풍이 일어나자,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가전리 청신의숙에서 훈도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의 소식을 듣고 가까이 지내던 유창순·김상훈 등과 의논하며 독립 방법을 모색하며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수신면 장산리의 감리교회가 운영하는 장명학교 교사로서 이후 3·1운동 때 옥고를 겪은 조만형과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을 가르쳤다. 1918년부터는 병천리 성공회 구세실(Alfred Cecil Cooper(1882~1964)) 주교가 운영하는 진명학교에서 교사를 하던 중 3·1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지령리에 살던 조인원과 유중권·유중무 형제, 유관순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아우내 만세 운동에 주도적인 참여를 하겠다고 결의하고 앞장섰다. 4월 1일 병천 아우내장터에는 천안 주민들을 포함하여 각지에서 모인 약 3,000명의 장꾼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고, 군중은 무리를 지어 대한 독립 만세를 연달아 높이 외치면서 병천 일본 헌병 주재소로 향했다. 이때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만세 행렬을 제지하였다. 그 과정에서 군중은 헌병주재소로 들어가, 적극적인 항의를 하면서 시위는 더 격렬한 양상을 띠었다. 오후 4시경 병천헌병주재소를 지원하려고 천안 철도 엄호대장이던 키네(甲) 대위 이하 6명이 자동차를 타고 병천으로 왔다. 뒤이어 무차별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일시적으로 총격에 놀라 시위대가 흩어졌으나 이내 다시 몰려들었고, 여성들은 근처 냇가에서 치마에 돌을 싸서 군중에게 날랐고, 군중은 이 돌멩이로 맞섰다. 이러한 격렬한 만세 시위의 선두에 나섰다가 헌병이 쏜 총에 맞고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본 헌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총을 쏴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 최정철(崔貞徹)은 아들의 시신 주변에 있던 헌병의 멱살을 잡으면서 “내 나라를 찾겠다고 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당장 내 아들 살려내라!”라며 절규하였다. 이에 헌병은 최정철에게도 총을 쏘았다.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은 4월 1일 한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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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충청남도 천안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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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충청남도 천안시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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