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0월 일본 (日本) 동경 (東京) 에서 함북 (咸北) 회령 출신 (會寧出身) 백신도 (白信道) 의 주도 (主導) 로 비밀리 (秘密裡) 에 회합 (會合) 을 거듭하고 취직상 (就職上) 의 차별 (差別) 조선내 (朝鮮內) 의 의무교육 (義務敎育) 의 불비 (不備) , 조선 (朝鮮) 농촌 (農村) 의 피폐 (疲弊) , 특별지원병제도 (特別志願兵制度) 또한 소위 (所謂) ‘내선일체’ (內鮮一體) 를 내걸면서 조선민족 (朝鮮民族) 을 착취 (搾取) 압박 (壓迫) 하고 있으므로 조선 (朝鮮) 은 반드시 독립 국가 (獨立國家) 가 되어야 하며 이 사명 (使命) 을 추진 (推進) 하기 위하여 먼저 회령 출신자 (會寧出身者) 로서 친목회 (親睦會) 를 조직 (組織) 하고 단결 (團結) 을 촉구 (促求) 하며 활동 (活動) 하다가「우리조선독립운동 (朝鮮獨立運動) 클럽」의 현창석 (玄昌碩) 이 피체 (被逮) 됨으로서 친목회 (親睦會) 백신도 (白信道) 외 (外) 4명 (名) 이 피체 (被逮) 될때 피신 (避身) 하여 1년 6월간 (月間)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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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함북 경흥(慶興) 사람이다. 1940년 10월 일본 동경(東京)에서 백신도(白信道)의 주동으로 회령(會寧)출신 인사들이 비밀리에 회합을 거듭하면서 직업상의 차별, 일본 도항(渡航)의 불편, 한국내의 의무교육 불비, 한국농촌 피폐, 특별지원병제도 강제 등과, 기만정책인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 등 일체의 모순을 타파하는 길은 오직 한국민족의 독립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사명을 추진하기 위해서 먼저 회령출신 십 수명으로 친목회(親睦會)를 조직하고 상호단결과 민족의식을 강화하면서 각 인에게 책임을 부여할 때, 중등학교 교원이 되어 장래 조선내에 특수대학을 창설하고 그 총장이 되어 인재양성을 할 수 있도록 연구 추진한다는 책무를 부여받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42년 4월 '우리 조선독립(朝鮮獨立)그룹'의 현창석(玄昌碩)이 붙잡히는 바람에 이 친목회의 반일운동이 발각되어 백신도·이두곤(李斗坤)·김관춘(金寬春)·최태연(崔泰淵)·박용근(朴龍根) 등이 붙잡힐 때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8권 97∼10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225∼2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63∼13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