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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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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尹圭鉉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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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정보

공적정보
운동계열 3.1운동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포상년도 1998 훈격 애족장
공훈록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23일 삼가면(三嘉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김상준(金相峻)과 함께 광무황제의 인산에 참예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3·1운동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만세시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김상준은 고향인 산청군 신동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주도하였으며, 윤규현도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동지들을 규합해 갔다. 그는 한필동(韓弼東)·허동규(許東奎)·한식동(韓湜東)·윤구현(尹求鉉)·윤승현(尹承鉉)·허장(許 ) 등과 더불어 삼가면·가회면(佳會面)·상백면(上栢面) 등 각면의 동지를 규합하면서 거사 준비를 해 나갔다. 그들은 3월 23일 삼가시장에서 거사하기로 합의하고, 면민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모이도록 하였다.

3월 23일 상백면에서는 약 4,000여 명의 군중이 봉기하여 그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여 면사무소를 불태운 후 통신을 차단하기 위하여 전신주 2개를 절단하면서 약 10리 되는 삼가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가회면민들은 농악을 울리면서 속속 삼가시장으로 몰려왔다. 이렇게 모인 군중은 12,000∼13,000명에 달하였다.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기던 일경들이 요소 요소에 배치되었으나 군중들은 위세 당당하게 몰려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오후 3시, 정금당(正衿堂) 앞 광장에서 주도 인물들에 의해 일제 규탄의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임종봉이 열띤 연설을 하고 있는 도중,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대퇴(大腿)를 맞아 단상 아래로 떨어졌다. 이를 본 군중들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여 곤봉과 낫을 들고 경찰 주재소와 우체국으로 몰려갔다. 이에 놀란 일경들은 일제히 그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13명의 순국자와 3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인해 윤규현은 피체되어, 이해 9월 2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陜川의 獨立運動史(陜川文化院, 1990) 32·33·36面
  • 陜川誌(故鄕文化社, 1994) 220∼222面
  • 抗日獨立有功者追慕碑(1995年 建立)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18·319面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657·676·678面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491·494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慶南獨立運動小史(卞志燮, 1966) 17·18·42·45面
  • 陜川郡誌(陜川郡誌編纂委員會, 1981) 638∼640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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